1999년과 2000년 겨울, 대한민국 TV 앞은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 밤마다 적막이 흐르곤 했습니다. 드라마가 시작하는 밤 10시가 되면 길거리의 택시 잡기가 쉬워지고, 식당마다 가동되는 TV 채널이 모두 하나로 통일되던 시절. 바로 MBC 드라마 <허준>이 만들었던 전무후무한 풍경이었습니다.
한국인들의 마음을 이해 할 수 있는 시청률 64.8프로의 드라마, 1976년 ‘집념’, 1991년 ‘동의보감’으로 두 차례 방송했고, 2013년 ‘구암 허준’으로 다시 리메이크 했던 드라마입니다. 이미 스토리를 아는데도 불구하고 4차례나 방영했고 그 때마다 인기가 있었던 것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인간의 고귀함을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91년 동의보감 방영 후 한의학과의 인기가 급상승했습니다. 작중 허준이 매실을 이용하여 역병을 수습한 것을 보고 현실에서도 매실 열풍이 불었으며, 지금까지 해마다 많은 사람들이 매실주, 매실청을 담궈 먹습니다. 매실의 대표적인 효능은 소화 촉진, 피로 회복, 해독 및 살균 작용입니다. 풍부한 유기산이 위장 운동을 돕고, 피로물질을 없애며, 유해균을 억제합니다.
2000년 허준을 계기로 더욱 한의학과의 인기가 높아졌습니다. 한의대가 의대보다 입결이 올라갔었던 유일한 시기라고 합니다.
최고 시청률 64.8%. 숫자로만 보면 단순한 과거의 흥행 기록 같지만, 그 시절을 통과해 온 이들에게 <허준>은 단순한 사극 그 이상의 존재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수많은 명작 드라마와 화려한 OTT 신작들이 쏟아져 나오는 지금까지도, 왜 많은 이들이 인생 드라마로 단연 이 작품을 꼽는지 다시금 돌아보게 됩니다.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외국인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습니다.
2012년에는 2월부터 5월까지 이라크 쿠르드 자치구 내 공영방송사에서 방영한 MBC 드라마 ‘허준’이 시청률 80%를 찍는 기염을 토해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에 몰두했으면 허구한 날 테러가 날아다니는 동네인데 허준이 방영되는 시간대에는 테러가 없어 조용했을 정도라 합니다.
그 덕분에 주인공 허준 역의 배우 전광렬에게 이라크 대통령의 부인(영부인) 히로 이브라힘 아흐메드 여사가 주 이라크 한국 대사관을 통해 친필 초청장을 보내왔다. 이라크는 대한민국 외교부가 지정한 여행금지국이기 때문에 대한민국 국민은 외교부의 허가가 없으면 이라크에 방문할 수 없지만, 당시 이라크 영부인의 친필 초청장까지 받은 전광렬은 이례적으로 외교부에게 여권 사용허가서를 발행 받아 이라크 북부주를 방문, 국빈 대우를 받으며 현지 언론과 팬들의 뜨거운 영접을 받았다. 게다가 전광렬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나눔 한방 의료 봉사단”을 꾸려, 적극적으로 이라크 해외 봉사활동에 나섰다. 그의 두 번째 이라크 방문에 영부인이 직접 참여했으며, 그가 속한 의료봉사단은 국빈급 경호와 안전보장 등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 받으며 다시 한 번 화제가 된 바가 있었다.(출처-나무위키)
1. 첩의 자식에서 ‘심의(心醫)’로: 인간 허준의 뜨거운 성장기
드라마 <허준>이 선사하는 가장 큰 울림은 ‘낮은 곳에서 피어난 집념’입니다.
주인공 허준(전광렬 분)은 서얼(첩의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신분적 한계에 부딪혀 밀수와 밀매를 일삼던 거친 청년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와 아내 다희를 이끌고 산청으로 도망치듯 내려가 스승 유의태(이순재 분)를 만나며 그의 인생은 180도 바뀌게 됩니다.
이 드라마가 뛰어난 점은 허준을 처음부터 완성된 성인(聖人)으로 그리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스승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조급해하기도 하고, 스승의 아들 유도지(김병세 분)와의 경쟁심에 눈이 멀어 실수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환자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느끼는 시련들을 겪으며, 그는 기술만 뛰어난 의원이 아닌 마음을 고치는 ‘심의(心醫)’의 길로 한 걸음씩 나아갑니다.
“의원은 환자의 병을 보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마음을 보아야 한다.”
스승 유의태가 강조했던 이 철학은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이자,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깊은 경종을 울리는 화두입니다.
요즘 참교육이라는 드라마가 한참 인기입니다. 정말 한 사람의 훌륭한 스승이 제자의 인생을 바꾼 사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있습니다. 동양에서는 임금, 스승,부모에 대한 은혜를 중하게 가르쳐 왔는데 현대에는 많이 퇴색되어 안타깝습니다.
양반이나 부자는 아프면 의원을 찾으면 되지만 서민들에게는 부담이었습니다. 허준이 고심끝에 주위에 흔한 풀,나무로 치료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준것이 동의보감이라는 책의 완성이었습니다. 이 책으로 인한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해결한 덕은 길이 칭송받고 있습니다.
2. 신화가 된 명장면들: 해부, 그리고 스승의 마지막 선물
<허준>에는 지금도 수많은 시청자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명장면들이 가득합니다. 그중 단연 으뜸은 스승 유의태의 ‘시신 해부’ 에피소드입니다.
반신불수와 반위(위암)로 죽음을 앞둔 유의태는 자신의 몸을 제자 허준에게 내어주며 인체 내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의술을 완성하라는 유언을 남깁니다. 어두운 동굴 속, 눈물을 흘리며 스승의 스승 된 마지막 은혜를 칼끝으로 받아들이던 허준의 모습은 사극 역사상 가장 숭고하고도 강렬한 명장면으로 손꼽힙니다.
이뿐만 아니라 역병(전염병)이 창궐한 마을로 달려가 자신의 목숨을 건 채 환자들을 돌보던 순간, 내의원 의과 시험을 보러 가던 중 병든 빈민들을 외면하지 못해 시험을 포기하던 모습 등은 ‘진정한 사명감이란 무엇인가’를 일깨워주었습니다.
3. 입체적인 캐릭터와 잊을 수 없는 조연들의 양념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든 주변 인물들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 유의태 (이순재): 엄격함 속에 제자에 대한 깊은 사랑을 숨겨둔 최고의 스승.
- 유도지 (김병세): 허준을 향한 열등감과 야망 사이에서 갈등하던 입체적 인물.
- 예진아씨 (황수정): 허준의 정신적 지주이자 헌신적인 조력자.
- 임오근 (임현식):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드라마에 특유의 유머를 더하며 “줄을 서시오!”라는 국민적 유행어를 탄생시킨 주인공.
이처럼 주조연을 가리지 않는 입체적인 캐릭터 구축과 최완규 작가의 탄탄한 극본, 이병훈 감독의 유려한 연출이 어우러져 64부작이라는 긴 호흡 동안 단 한 순간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습니다.
4. 백성을 위한 책, 《동의보감》이라는 위대한 유산
드라마의 후반부는 궁중의 권력 다툼이나 개인의 성공 시대를 넘어, 조선의 백성들을 위한 의서 《동의보감》을 집필하는 허준의 고독한 투쟁에 집중합니다.
전쟁과 기근으로 죽어가는 백성들이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재(향약)로 병을 고칠 수 있도록 한글 이름과 처방을 정성스레 기록해 나가는 과정은 감동 그 자체입니다. 자신의 몸이 비틀어지고 눈이 어두워지는 순간까지 붓을 놓지 않았던 그의 집념은, 오늘날 《동의보감》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었던 역사적 숭고함을 가슴 깊이 체감하게 합니다.
5. 명대사
🩺 유의태 (이순재) – 참된 스승의 철학과 가르침
- “의원은 환자의 병을 보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마음을 보아야 한다.” (본문에도 언급된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명대사)
- “세상에 고치지 못할 병은 없다. 오직 병을 고치지 못하는 의원이 있을 뿐이다.”
- “병에는 귀천이 없거늘, 어찌 병자를 두고 신분의 귀천을 가린단 말이냐.”
- “내 몸을 갈라 병의 연유를 밝히고, 이 세상의 병든 자들을 구하라.” (자신의 시신을 내어주며 남긴 유언)
- “물 하나에도 서른세 가지의 쓰임새가 있느니라. 물조차 가려 쓰지 못하는 자가 어찌 병을 고치는 의원이라 할 수 있겠느냐.”
- “진정한 심의(心醫)란, 환자의 아픔을 제 몸의 아픔처럼 느끼는 긍휼지심(矜恤之心)을 가진 자를 말함이다.”
- “네 놈은 의원이 될 자격이 없다! 내 의원에서 당장 나가거라!” (허준이 교만해졌을 때 일침을 가하며 파문하던 순간)
🌿 허준 (전광렬) – 꺾이지 않는 집념과 인술
- “소인은 그저 병자를 고치는 의원일 뿐입니다.” (권력과 재물을 마다하고 의원의 본분을 지키며)
- “스승님의 옥체를 어찌 제 손으로 가른단 말입니까… 스승님!” (동굴에서 유의태의 시신을 앞에 두고 오열하며)
- “살아생전엔 스승님의 뜻을 어기며 불효하였으나, 돌아가신 후에는 스승님의 그 뜻을 목숨을 바쳐 받들겠나이다.”
- “전하, 백성들이 병마와 기근에 시달리고 있사옵니다. 소신이 의서를 완성하여 가엾은 백성들을 구하게 해주시옵소서.” (동의보감 편찬의 의지를 밝히며)
- “제 손에 침통이 쥐어져 있는 한, 저는 결코 환자를 버릴 수 없습니다.”
- “천하의 모든 풀과 나무, 짐승과 곤충이 모두 사람을 살리는 약재가 될 수 있습니다.”
- “어머니, 그리고 다희야… 내가 반드시 조선 최고의 의원이 되어 호강시켜 주겠소.” (밀무역을 하던 왈패 시절, 마음을 다잡으며)
🤣 임오근 (임현식) – 드라마의 감초, 국민 유행어
- “줄을 서시오! 줄을 서시오!” (90년대 후반 전국을 강타했던 최고의 유행어)
- “아이고, 우리 홍춘이~” (홍춘이를 향한 애절하고도 코믹한 구애의 대사)
🌸 예진아씨 (황수정) 및 기타
“허준, 그는 서얼이라는 거대한 신분의 벽 앞에서도 결코 굴복하지 않은 인간 승리의 표본이었다.” (극 전체를 요약하는 장엄한 나레이션)
“의술은 인술(仁術)이라 하였습니다.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데 어찌 법도와 신분을 따지십니까!” (예진아씨)
“허 의원! 제발 우리 어머니 좀 살려주시오, 허 의원!” (허준의 옷자락을 붙잡고 매달리던 수많은 백성들의 외침)
“조선의 의술이 결코 명나라에 뒤질 것이 없음을, 이 의서를 통해 증명하게 될 것이다.” (선조 및 내의원의 동의보감에 대한 기대감)
맺음말: 왜 지금 다시 <허준>인가?
빠른 전개와 자극적인 소재가 범람하는 요즘, <허준>은 묵직하고 클래식한 진정성의 힘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한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타인을 향한 숭고한 애타심(愛他人)으로 삶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 <허준>은 단순한 옛날 드라마가 아니라, 올바른 삶의 태도와 인내, 그리고 ‘사람에 대한 예의’를 일깨워주는 우리 시대 최고의 인생 지침서입니다.
아직 이 명작을 접하지 못했거나 오랜만에 추억에 젖어보고 싶다면, 이번 주말 1화부터 차근차근 정주행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드라마의 사운드트랙에 세계적인 가수 조수미의 노래도 너무 잘 어울렸습니다.여러분도 한번 다시 들어보세요
| 송인 I (送人 I) | 조수미 |
| 불인별곡 (不忍別曲) | 조수미 |
그리고, 옛드 : MBC 레전드 드라마 에서 무료 스트리밍으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