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마 톤즈 얘기를 쓰려고 며칠을 미뤘다. 다시 보고 나서 뭔가를 적으려고 하면 자꾸 감정이 앞서서 글이 산으로 가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결국 다시 노트북을 켠 건, 이태석 신부 이야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더 자주 생각나기 때문이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서도 이미 이 영화를 알고 계신 분이 많을 거다. 그럼에도 다시 한번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처음 이 영화를 만났을 때
처음 울지마 톤즈를 본 건 개봉 당시가 아니라 몇 년이 지난 뒤였다. 지인이 무겁고 진지한 영화 하나 추천해달라고 했을 때 별생각 없이 이 영화를 꺼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정작 그날 밤 같이 보다가 나조차 예상 못 한 지점에서 눈물이 났다. 아프리카 오지에서 활동한 신부님 이야기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막상 화면으로 보는 것과 텍스트로 아는 것 사이의 거리가 그렇게 클 줄은 몰랐다.
어릴 때 위인전에서 슈바이처를 보면서 이렇게 숭고한 사람도 있구나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사는 부산에 같은 시대에 이런분이 있었다는게 너무 감동적이면서 슬펐다.
그날 이후로 이 영화는 내게 일종의 기준점이 됐다. 누군가에게 진짜 좋은 다큐멘터리를 추천해달라는 부탁을 받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 됐고, 스스로 마음이 건조해졌다고 느낄 때마다 다시 꺼내 보는 영화가 됐다. 이번에 다시 본 것도 그런 이유였다.
톤즈라는 공간
영화 제목에 등장하는 톤즈는 남수단의 작은 마을이다. 오랜 내전으로 폐허가 된 지역이고, 총상, 콜레라, 나병 같은 것들이 일상처럼 존재하던 곳이었다. 처음 신부님이 이곳에 도착했을 때 상황이 어땠는지를 보여주는 초반부 장면들은 그 자체로 압도적이다. 제대로 된 병원이 없어 상처를 방치하다 팔다리를 잃는 사람들, 초등교육조차 받지 못한 아이들, 총알과 화약 냄새가 익숙한 마을 풍경.
의사였던 이태석 신부는 이곳에 병원을 세운다. 그런데 영화가 흥미로운 지점은, 병원을 짓는 과정 자체보다 그 이후에 그가 보여준 태도에 더 오래 머문다는 점이다. 그는 의사로서 환자를 치료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학교를 세우고, 음악을 가르치고, 브라스 밴드를 조직한다. 총 대신 악기를 쥐어준다는 표현이 클리셰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실제 그 마을의 배경을 알고 나면 이건 결코 상투적인 표현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위인전이 아니라 관계에 대한 기록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새삼 느낀 건, 이 작품이 한 위인의 업적을 나열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감독은 이태석 신부가 세상을 떠난 뒤,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얼굴에 더 오래 카메라를 둔다. 톤즈의 아이들이 인터뷰 도중 말을 잇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 그 울음이 옆에 있던 다른 아이에게 번지듯 퍼지는 장면은 아무리 다시 봐도 마음의 준비가 안 된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슬픔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즉각적으로 전염되는지를 새삼 느꼈다. 연출된 감동이 아니라, 실제로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의 그리움이 카메라 앞에서 무방비하게 터져 나오는 순간이었다. 다큐멘터리이기에 가능한, 그리고 다큐멘터리라서 더 무거운 장면이었다. 그토록 울지 않는다는 남수단 사람들조차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이태석 신부는 얼마나 위대하고 진심이었으며, 사랑이었다. 본인이 오히려 위로를 받는다는 심정은 헤아리기가 어렵다. 아마도 순수한 그들의 미소와 마음때문일 것이다.
신부님이 생전에 직접 가르쳤던 아이들이 그의 장례식 영상 속에서 연주를 하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서툰 손놀림으로 나팔을 부는 아이들의 얼굴 위로, 그들이 아직 다 이해하지 못했을 상실감이 겹쳐 보인다. 이 장면이 유독 오래 남는 건, 음악이라는 매개가 슬픔을 정제해서 보여주기 때문인 것 같다.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연주 속에 그대로 담겨 있다.
효율의 시대에 다시 묻는 질문
요즘처럼 뭐든 성과와 효율로 환산되는 시대에, 이태석 신부의 선택은 언뜻 비효율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한국에서 의사로 계속 일했다면 훨씬 안전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었을 텐데, 왜 굳이 내전 지역까지 갔을까. 영화는 이 질문에 명쾌한 답을 내놓지 않는다. 대신 그가 남긴 편지, 사진,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관객이 스스로 답을 찾도록 유도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를 볼 때마다 봉사나 희생이라는 단어보다, 관계라는 단어가 더 자주 떠오른다. 신부님이 특별했던 이유는 무언가를 일방적으로 베풀어서가 아니라, 톤즈 사람들을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대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병 환자의 발을 직접 씻기고 상처를 소독해주는 장면에서, 그는 시혜자가 아니라 그저 그 자리에 있는 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 시선의 높이가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것 같다.
실화라서 다른 무게
극영화였다면 눈물을 자극하는 과잉 연출이라고 지적받았을 법한 장면들이, 실제 인물의 실제 기록이라는 이유만으로 완전히 다른 무게를 가진다. 신부님이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도 톤즈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는 대목, 결국 그 바람을 이루지 못하고 마흔여덟의 나이에 눈을 감았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후반부는 정말 담담하게 보기 어렵다.
암 투병 중이던 그가 남긴 인터뷰 영상도 인상적이다. 죽음을 앞두고도 톤즈 아이들 걱정을 먼저 하는 모습, 병원 침대에서도 그곳 사람들의 안부를 묻는 모습은 억지스러운 미화가 아니라 그냥 그의 삶이 원래 그런 방향으로 흘러왔다는 걸 보여준다.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이런 장면들이 감동을 위해 배치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했던 순간들의 기록이라는 데 있다.
함께 놓고 보면 좋은 자료들
이태석 신부의 삶을 다룬 콘텐츠는 이 영화 이후로도 여러 편 나왔다. 그의 생애를 정리한 책이나 후속 다큐멘터리도 있고, 톤즈 현지 상황을 이후 추적한 방송 다큐도 존재한다. 개인적으로는 순서를 좀 신경 써서 접하는 걸 추천하고 싶다. 울지마 톤즈를 먼저 보고 나서 다른 자료를 찾아보는 편이, 이 영화가 가진 날것의 감정과 담백한 편집을 온전히 느끼는 데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배경지식을 먼저 채우고 보면 오히려 감정의 진폭이 줄어드는 느낌이 있다.
또한 이 영화가 개봉한 이후 국내에서 이태석 신부를 기리는 여러 움직임이 있었다는 것도 함께 알아두면 좋다. 그의 이름을 딴 봉사상이 생기기도 했고, 톤즈 지역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단체들도 만들어졌다. 영화 한 편이 실제로 이어진 변화들을 낳았다는 사실은, 이 작품이 단순한 감동 소비에 그치지 않았다는 걸 보여준다.
접근성에 대한 아쉬움
아쉬운 점을 하나 꼽자면 접근성이다. 대형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손쉽게 찾아보기는 어렵고, 국내 다큐멘터리 전문 플랫폼이나 도서관 자료실, 혹은 특별 상영회를 통해 접하는 경우가 많다. 좋은 작품일수록 쉽게 닿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는 그런 면에서 조금 손이 가야 하는 작품이다. 그럼에도 그만큼 찾아서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다시 봐도 무너지는 이유
이 영화를 여러 번 봤는데, 매번 무너지는 지점이 조금씩 다르다는 게 흥미롭다. 처음 봤을 땐 아이들이 우는 장면에서 무너졌고, 두 번째 봤을 땐 신부님이 투병 중 남긴 인터뷰에서 무너졌다. 이번에 다시 보면서는 오히려 담담한 내레이션 사이사이, 톤즈 마을이 조금씩 변화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짧은 장면들에서 더 오래 마음이 머물렀다. 병원이 세워지고, 아이들이 처음으로 악기를 손에 쥐고, 마을에 웃음소리가 조금씩 늘어나는 그 과정들.
이건 아마 영화가 정교하게 짜여 있어서라기보다, 다큐멘터리가 가진 기록성 자체가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방식으로 다가오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어떤 시기에 이 영화를 보느냐에 따라, 같은 장면도 완전히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아마 이런 이유로 이 영화를 인생 영화로 꼽는 사람들이 많은 게 아닐까 싶다.
마무리하며
인생 영화라는 표현을 함부로 쓰고 싶지는 않지만, 울지마 톤즈는 볼 때마다 나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다. 거창한 메시지를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보고 나면 한동안 여운이 가시지 않는 영화. 아직 안 보신 분이 있다면, 마음의 여유가 있는 날 조용히 한번 틀어보시길 권하고 싶다. 다만 미리 말씀드리자면, 휴지는 넉넉히 준비해두시는 게 좋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혼자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눠보시길 추천한다. 이 영화는 보고 나서 하는 대화까지가 완성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